맨부커상 수상자 줄리언반스. 그가 맨부커상을 수강하게 한 작품이 바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 작품이다. the sense of an ending 이게 원제인데 얼핏보면 한국어 번역이 좀 어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인 토니 웹스터의 행동 하나하나가 결과적으로 모두 다 틀린걸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토록 확신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이 자기확신적인 예언은 항상 틀렸고 결과가 좋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 책은 268쪽으로 장편이 아닌 중편 소설로 분량이 대단히 얇다. 그런데 이 책이 맨부커상에 그것도 심사 30분만에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다고 하니 좀 호기심이 많이 갔다. 근데 작가는 268쪽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번 읽고 나서 바로 다시 한번 더 읽었다고 하니 500페이지 책과 다르지 않다고 자신만만해 했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사실 이 소설이 반전이 있을거라는 사실을 알았고 줄리언반스의 소설 the only story를 먼저 읽어봤던 기억이 있어서 뜬금없이 날아든 사라 포드의 유언과 에이드리언의 마지막 3개월은 행복했었다고 생각한다는 말에서 결말을 대충 유추할 순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한데로 소설 곳곳에는 여러가지 유추와 암시 복선들이 깔려있다보니 결론은 정해져 있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여러 부분에서 이 해석이 맞을까? 저 해석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검색으로도 여러 후기들을 보는데 내가 궁금해 했던 내용에 대한 속시원한 답은 없어서 나름대로 생각한 추측들을 펼쳐본다. 어디까지나 작품속에 나온 단서들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생각하는거라 100%일리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글로 정리를 해보면 뭔가 찝찝하게 가렵던 곳을 한번은 긁은 기분이라 궁금해서 검색에 검색을 통해 관련 물음이 있던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에이드리언의 아들이 토니를 보고 힘들어 하는 이유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원초적으로 이 부분이 너무 와닿지 않았다. 에이드리언의 아들은 선천적으로 지적장애가 있다고 묘사되는데 어떻게 토니를 보고 힘들어 한다는건지?
소설 속에서 이 청년은 사라 포드(베로니카의 어머니)와 에이드리언의 비밀스러운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토니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결국 진실에 다가가며 자신이 무심코 보낸 편지와 행동이 이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음을 깨닫게 된다.
- 과거의 아픔과 연결된 존재:
토니는 자신도 모르게 에이드리언과 사라 포드의 관계를 부추기고 비극을 초래한 인물로, 에이드리언의 아들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과거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일 수 있다. - 불편한 현실의 마주침:
에이드리언 2세는 장애와 함께 살며 이미 현실에서 고립되고 상처받고 있는데, 토니가 등장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과거의 비밀과 부모의 선택에 대한 괴로움을 다시금 직면. - 가족의 비밀과 죄의식의 투사:
에이드리언 2세는 토니라는 존재를 통해 부모 세대의 실수, 죄의식, 비밀스러운 삶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괴로움을 겪었을것이다. 그는 단순히 장애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부모의 숨겨진 과거로 인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복합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
따라서 에이드리언의 아들이 토니를 보고 힘들어하는 이유는, 단지 토니 개인 때문이 아니라 토니가 상징하는 자신과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강제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일거다.
에이드리언2세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던게 아니라 엄마인 사라의 죽음으로 인해 최근 들어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이해하면 어떨까? 근데 그건 너무 말이 안된다. 근데 또 한편으로는 지적장애를 가진 에이드리언2세가 생전 처음 본 토니를 보고 힘들어한다는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게, 소설속에서 묘사되는 에이드리언2세가 가지고 있는 장애 정도를 미루어봤을 때 그가 토니의 존재를 안다고 해도 그게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를 에이드리언 2세가 이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작품에서 에이드리언 2세가 토니를 보고 과거가 떠올라서 힘들어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저 보호사 청년이 토니에게 다가와 에이드리언이 최근 상황으로 힘들어하는데 당신을 보고 할 뿐이다. 에이드리언 2세는 중증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 토니의 존재나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거나 그로 인해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명확한 묘사가 작품 내에는 실제로 없다.
작품을 다시 살펴보면, 실제로 토니 앞에 나타났던 청년은 베로니카의 안내로 만난 에이드리언 2세이며, 그는 토니와의 만남에서 매우 혼란스럽고 불편해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에이드리언 2세가 토니의 정체를 명확히 알고 고통스러워한다기보다는, 단지 낯선 환경이나 상황, 혹은 타인과의 소통 자체가 어려운 그의 선천적인 특성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안경을 벗고 토니를 보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런 감상도 토니의 입장이지 에이드리언2세의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정서적으로 힘들어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에이드리언 2세 본인이 아니라 토니 자신과 베로니카다. 작품의 서술자인 토니는 자신의 과거 행동(베로니카에게 보낸 적대적 편지)이 결국 친구인 에이드리언과 사라 포드의 관계와 출산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고 느끼며 깊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토니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죄의식을 에이드리언 2세의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에 투사하여 마치 그가 자신을 보고 고통스러워한다고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작품 끝에서 토니가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잘못된 내용 왜곡되고 편집된 모습이 많아서 그가 들었다는 당신 때문에 에이드리언2세가 힘들어 한다는 말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게 된다.
- 에이드리언 2세는 실제로 토니가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 토니가 에이드리언 2세가 자신을 보고 힘들어한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의 죄책감과 불편함을 에이드리언 2세에게 투사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 작품에서 장애를 가진 청년(에이드리언 2세)은 주로 토니가 겪는 죄의식과 후회의 상징적 존재로 등장하며, 그의 장애와 혼란스러운 행동은 작품의 비극적 분위기를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할 뿐이다.
즉, 실제로 에이드리언 2세가 토니 때문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았다기보다, 토니 스스로가 자신의 기억과 죄책감을 통해 이를 그렇게 해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러한 모호성은 줄리언 반스의 이 작품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인 “기억의 왜곡”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럼 이제 이정도 까지 왔다면 한가지 더 궁금해지는게 있다. 바로 토니가 베로니카와 만나고 있을 때 그녀의 집에 초대되어 주말을 보낸 장면이다. 그 중 둘째날 아침 토니가 일어나니 집에는 사라 포드 (베로니카의 엄마)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둘만 남아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여기서 사라가 토니를 유혹하거나 추파를 던지고 있었던걸까?
작품에서 토니가 사라 포드(베로니카의 어머니)를 처음 방문했을 때, 베로니카와 가족들이 외출한 후 둘만 집에 남겨진 상황에서 사라가 보인 행동은 분명한 긴장과 모호함을 지닌 장면으로 사라 포드의 문제적 행동 성격을 드러내는 일화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는 이 장면을 명확하게 ‘유혹’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독자에게 열린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즉, 사라가 토니를 의도적으로 유혹하려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작품 내에 없다. 하지만 상황의 맥락과 이후 전개된 비극을 고려했을 때,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어느 정도 미묘한 긴장감이나 성적인 암시를 느끼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받아야만 소설이 전개될 수 있다.
사라의 행동을 유혹으로 볼 수 있는 근거
- 사라는 토니와 단둘이 있을 때 차를 내어주며 대화를 시도하고, 따뜻한 관심을 보인다.
- 그녀는 토니에게 “조심하라(Watch out)”고 말하며, 딸인 베로니카와의 관계에서 모호한 경고를 전달한다. 한국어 번역에서는 베로니카에게 모든걸 내어주지 마라라고 번역이 되어있다.
- 이때의 사라는 중년의 여성으로 묘사되며, 그녀가 토니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장면에서 미묘한 성적 긴장감이 암시되어 있다. 특히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계란후라이를 하나 더 얹어준다거나, 작별인사를 할 때 손을 허리아래 두고 아쉬운듯이 손만 살짝 수평으로 흔드는 등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명확한 유혹으로 보기는 어려운 이유
- 작가 줄리언 반스는 이 장면에서 성적인 행동이나 뚜렷한 유혹의 몸짓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특히 딸의 남자친구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환대의 의미로 보는게 정상적인 인식이다.
- 사라의 행동은 이후 밝혀지는 사라와 에이드리언의 관계와 그로 인해 생겨난 비극적 결과를 암시하기 위한 복선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 사라의 관심은 ‘유혹’보다는 오히려 토니와 베로니카의 관계가 잘못될 가능성, (계란후라이를 하면 그걸 봐야 하는데 토니를 살펴보다 계란후라이를 망치는 것, 또 아무렇지 않게 망가진 계란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사라의 행동)혹은 그녀 가족이 지닌 복잡한 내면의 갈등과 불행을 암시하는 것에 가까운 것으로 보는게 좋다.
작품의 맥락적 결론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독자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사라의 행동을 명확히 ‘유혹’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이후에 벌어질 비극적인 전개를 미리 예고하는 복선이자, 토니의 기억이 얼마나 모호하고 왜곡될 수 있는지 강조하는 장치에 더 가까워 보인다.
즉, 사라가 토니를 유혹했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녀가 보여준 행동과 관심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기억의 신뢰성’과 ‘예감’이라는 주제와 연결된 일종의 심리적 긴장감의 표현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거기에 사라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토니에게 왜? 하는 순간이 있다. 베로니카와 토니가 헤어지고 난 뒤 사라가 토니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사라가 토니에게 보낸 편지는 겉보기엔 매우 애매모호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어서 ‘추파’나 ‘유혹’으로 해석할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설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사라의 편지는 단순히 개인적 유혹이나 성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봐야한다.
사라가 토니에게 보낸 편지의 특징
- 사라는 편지에서 토니와 베로니카의 이별에 대해 위로하며, 동시에 “당신은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다”라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전달.
- 그녀는 편지에서 토니를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하며, 토니가 “멋진 청년”이라는 칭찬을 하며 은근한 친밀감을 드러낸다.
- 사라는 편지에서 자신이 베로니카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토니를 개인적으로 걱정하고 챙기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충분히 성적이거나 로맨틱한 뉘앙스를 연상시킬 수 있으며, 독자 입장에선 ‘추파’로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라의 편지를 단순히 ‘추파’로 보기 어려운 이유
- 줄리언 반스는 이 작품에서 일관되게 모든 상황과 기억을 명확히 표현하지 않고, 늘 모호하게 제시한다. 즉, 이 편지 역시 독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게 설계된 것.
- 소설의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사실(사라와 에이드리언의 관계, 그들의 자녀인 에이드리언 2세의 존재 등)을 생각하면, 사라가 보낸 이 편지는 자신의 삶이 이미 깊은 불행과 비밀 속에 있다는 신호였을 가능성이 크다.
- 사라는 자신의 삶과 가족에게 결핍된 따뜻함과 행복을 토니를 통해 대리적으로나마 느끼려 했을 수도 있고, 젊음과 가능성을 지닌 토니를 부러워하는 동시에, 안쓰럽게 생각하는 감정으로 편지를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사라의 편지는 단지 젊은 남성인 토니에 대한 단순한 성적 추파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녀 자신의 외로움, 내면의 불행, 삶의 결핍을 암시하고, 어쩌면 자기 파괴적이고 불행한 선택(에이드리언과의 관계)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보는 것이 작품의 깊이를 더 잘 이해하는 접근법이다.
소설에서 베로니카의 오빠 잭은 첫 만남부터 토니의 성격과 태도를 예리하게 간파하는 인물이다. 특히 베로니카가 나중에 토니와 재회했을 때 분노하며 “넌 변한 게 없어. 우리 오빠(잭)가 한 말이 맞았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잭이 이미 오래전에 토니의 자기중심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을 알아차리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작품 속에서 토니가 베로니카의 집을 떠날 때 가족 구성원 중 유독 잭만 배웅하지 않는 장면이다.
잭이 토니를 배웅하지 않은 행동의 의미
- 토니에 대한 불신과 냉소: 잭은 처음부터 토니를 깊이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토니가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점잖은 척하지만, 실상은 우유부단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겉치레에 불과한 인물임을 알아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는 토니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표현하거나 친밀함을 보일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거다.
-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경계심: 잭은 가족 내에서 어느 정도 ‘보호자적 위치’에 있다. 그는 베로니카의 남자친구인 토니의 내면을 신뢰하지 못하고, 여동생과 그 관계가 미래에 문제가 될 것임을 미리 직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는 적극적으로 환영하지도 않고, 이별 시에도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 토니의 태도에 대한 조용한 비판과 판단: 잭의 행동은 겉으로는 소극적이지만 사실상 토니의 내면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메시지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잭은 의례적인 친절이나 예의조차 불필요하다고 판단할 만큼, 토니가 그에게는 진정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
- 에이드리언은 영국사람은 신중해야 할 때 신중하지 않는게 문제라고 하는데 잭의 행동이 그렇다. 대단히 똑똑하지만 잭의 태도는 냉소적인것에서 그치고 가족을 지키거나 문제의 중심에서 행동을 하는 인물은 아니다.
베로니카가 화를 내며 잭을 언급한 이유
베로니카가 “우리 오빠가 한 말이 맞았어”라고 하는 것은 과거 잭이 이미 토니를 보며 했던 부정적인 평가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이를 토니에게 확인시키는 장면.
이로 인해 독자에게도 ‘잭이 처음부터 토니의 성격과 태도를 정확히 파악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기능.
결론적으로 보면
- 잭은 처음부터 토니의 우유부단함과 자기중심성을 간파했다.
- 그가 토니를 배웅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자신의 평가를 조용히 드러내는 행위였다.
- 훗날 베로니카가 화를 내며 잭의 평가를 언급한 것은 토니가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잭의 첫인상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토니 본인만 제외하고 베로니카 그리고 잭 또 토니의 친구들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또 하나 재미있게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토니가 베로니카의 집에서 며칠 묵고 있을 당시에 첫날에 베로니카는 크게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토니가 자신의 엄마인 사라와 단둘이 남겨진 상황에서 사라의 추파에 어떤 태도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자 이후 베로니카는 더욱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하게 되는데
베로니카의 태도 변화가 의미하는 것
베로니카가 처음엔 자신의 집에서 토니를 크게 환영하거나 살갑게 대하지 않다가, 토니와 사라가 둘이 남은 (일종의 테스트) 뒤부터 급격히 친밀해지고 더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 베로니카는 어머니(사라)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사라가 젊고 매력 있는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미묘한 행동을 했던 이전의 경험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토니와 사라가 단둘이 남았던 그 짧은 순간이 베로니카에겐 불안을 자극하는 상황이었고, 이를 의식하며 자신의 관계를 보호하고자 더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 과거의 반복된 상처
토니가 추측한 베로니카의 ‘어떤 상처’는 그녀가 어머니의 부적절한 행동을 이전에도 겪었고, 이로 인해 이미 여러 번 정서적으로 고통받았음을 암시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추측은 베로니카가 가진 성격의 다소 방어적이고 냉소적인 측면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사라의 이전 행동에 대한 타당한 추측
소설은 사라가 이전에 다른 남자(베로니카의 남자친구 혹은 남자 친구들)에게 유혹이나 관심을 보였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여러 가지 암시를 통해 충분히 그런 경험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게 한다.
- 사라는 첫 만남 때부터 토니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익숙한 듯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여자는 확고한 태도가 있는 경우와 미스테리함을 남기는 2가지 부류가 있다고 토니는 마거릿( 토니의 전처 )과의 대화에서 나온다.
- 베로니카가 첫날부터 거리를 두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반복된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 이후 벌어진 사라와 에이드리언의 관계와 그 비극적 결과를 보면, 사라가 젊고 지적인 남성들에게 이전에도 미묘한 관심이나 욕구를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점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
- 숙맥에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토니는 사라의 유혹이 유혹인지도 몰랐던거고 에이드리언은 그렇지 않았을 거다.
이제 우리는 토니 , 베로니카 , 사라의 인물에 대해서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사라는 딸의 남자친구들에게 성적매력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고 추파를 던지고 그런 ‘별종’이다. 그걸 베로니카는 수 없이 경험했거나 봐야했었을 가능성이 높아 토니가 말하는 그녀의 ‘상처’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토니는 그럴 줄 짐작도 못했지만. 그런 배경지식을 가지고 봤을 때 사라는 왜 죽기전에 토니에게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겼을까? 또한 달랑 500파운드를 함께 남긴 의미는 뭘까?
사라는 왜 토니에게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겼을까?
사라가 일기장을 남긴 이유는 토니에 대한 ‘증오’보다는 일종의 ‘책임 전가’ 또는 ‘고백’ 에 더 가깝다.
- 진실에 대한 책임과 짐의 전가
- 사라는 토니가 에이드리언과 자신의 관계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토니가 과거 베로니카에게 썼던 모욕적인 편지가 간접적으로 사라와 에이드리언의 비밀스러운 관계의 발단이 되었기에, 사라는 자신의 죄책감과 책임의 일부를 토니에게 넘기려고 했을 수 있다.
- 사라는 토니가 에이드리언과 자신의 관계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 은밀한 고백과 진실의 폭로
- 사라는 그동안 비밀로 유지해왔던 에이드리언과의 관계를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토니에게 폭로하려 했던 것이다.
토니에게 일기장을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당신도 이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는 의도적 메시지이며, 어쩌면 사라 본인의 죄책감과 후회의 감정을 죽기 직전에 덜어내기 위한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 사라는 그동안 비밀로 유지해왔던 에이드리언과의 관계를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토니에게 폭로하려 했던 것이다.
- 토니를 향한 비난 혹은 처벌
- 한편으로는 사라가 토니에게 일기장을 주면서 그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가 애써 외면했던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게 만들어 일종의 처벌을 의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즉, “너도 이 비극의 공범이다” 라는 무언의 비난을 담은 행동으로도 볼 수 있다.
- 한편으로는 사라가 토니에게 일기장을 주면서 그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가 애써 외면했던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게 만들어 일종의 처벌을 의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라는 정말 토니를 증오했을까?
- 직접적으로 사라가 토니를 증오했다는 묘사는 소설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일기장과 돈을 남긴 것은, 최소한 ‘토니에게 원망, 미움, 또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는 점을 강력히 암시한다. 그건 뒤에서도 다룰 것이지만 500파운드라는 돈이 주는 무게감에서 엿볼 수 있다. - 사라는 증오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 그녀는 토니를 ‘증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동시에,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며 스스로의 죄책감을 나누려 했던 것으로. 즉, 토니를 비난함과 동시에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복잡한 내적 심리상태가 담긴 행동으로 보인다.
‘500’파운드’라는 돈에 담긴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500파운드는 작품에서 매우 상징적인 금액이다.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냥 버릴 수 있는 푼돈도 아니고. 채널 제도까지 갈 수 있는 그 정도의 돈. 왕복도 아니다 그저 그런 돈.
- 모욕적 의미의 상속
- 돈의 액수가 애매모호하고,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금액(적당히 무례한 금액)이라는 점에서, 이 돈은 토니를 경멸하거나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즉, 토니가 초래한 과거의 비극을 생각하면, 이 500파운드는 “너의 행동으로 인해 생긴 고통과 비극의 대가” 정도로 읽힐 수 있다.
- 죄의식과 책임의 공유
- 동시에 이 돈은 사라가 자신의 죄책감을 금전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사라 역시 에이드리언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며, 토니와 그 죄책감을 공유하고자 했던 행동일 수도 있다. - 즉, 일종의 ‘책임과 죄책감에 대한 상징적 보상’으로 토니에게 전달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 동시에 이 돈은 사라가 자신의 죄책감을 금전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 경멸과 속죄의 이중성
- 사라는 토니에게 이 모호한 금액을 남김으로써, 토니를 경멸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속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이중적 메시지를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내가 글의 맨 처음 언급했던 줄리언 반스의 또 다른 소설 유일한 이야기 (The only Story)에서 그려지는 이제 갓 어른이 된 청년 폴과 40대 중반의 유부녀 수잔과의 불륜이야기는 에이드리언과 사라의 사랑이 어땠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와 『유일한 이야기』(The Only Story)는 서로 다른 줄거리를 다루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인물 간의 부적절하면서도 강렬하고 은밀한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깊은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The Only Story속의 관계와의 유사성
『유일한 이야기』에서는 19세의 청년 폴과 40대 중반 유부녀 수잔이 나이 차를 초월하여 사랑에 빠지고, 비록 그 관계가 금기적이고 부도덕하다고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진실했던 시기로 묘사된다.
반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사라는 에이드리언과 자신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간접적으로 “에이드리언의 마지막 3개월이 행복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표현을 토니에게 남긴다.
이 표현은 에이드리언이 사라와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 금기를 초월한 순수하고 강렬한 행복감을 경험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두 소설이 공유하는 ‘금지된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사라가 언급한 ‘에이드리언의 행복했던 마지막 3개월’을 『유일한 이야기』 속 폴과 수잔이 겪은 금기적인 사랑이 가져다준 행복감과 연결 지어 보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
- 두 소설 모두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관계를 작품의 주요사건으로 다룸.
- 두 관계 모두 짧고 일시적이지만 깊고 진실한 행복을 포함.
- 이 행복은 관계의 부도덕성이나 그 결과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시간으로 표현
에이드리언과 사라 관계에 『The Only Story』를 대입할 때 드러나는 의미
사라가 에이드리언의 마지막 시간을 ‘행복’했다고 표현한 것은 다음과 같은 심리를 보인다.
- 사라는 자신과 에이드리언이 함께했던 그 짧은 기간이, 비록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지만, 두 사람에게는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삶에서 가장 순수했던 순간이었다고 믿었을 수 있다.
- 이는 『The Only Story』에서 폴과 수잔이 세상과 격리된 채 서로에게만 집중했던 행복했던 초기의 순간들과 동일한 심리적 깊이를 공유한다.
- 두 작품 모두 결국 이러한 행복한 시간 뒤에 극심한 상처와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 역시 유사하다.